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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겨울 문 앞입니다. 들판은 비고 낙엽마저 서둘러 흩어졌어도 아직 넉넉한 가을의 여운이 조금 남은 이들에게, 계절의 ‘순환’과 시간의 ‘전진’은 달력을 바꾸면서야 타협하겠지요. 지나간 달력을 고이 모신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는 탓에, 대림절은 늘 달력 교대식으로 시작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해는 새 달력에. 전례력은 겨울 한가운데 새 달력을 슬쩍 끼워 넣지 않습니다. 그 대신 죽음을 묵상하는 늦가을에, 그리스도 임금님을 장엄하게 고백하던 그 찰나에 겨울 문턱에 서서 종말과 재림과 성탄을 연이어 뫼비우스의 띠를 만듭니다. 위령 레퀴엠과 메리 크리스마스가 한 달력에 나란히 다정하게 있습니다.죽음이 부활과 재림의 희망으로, 다시 오심이 새로 나심으로, 그렇게 단절 없이 매끈하게 이어지는 시간의 오메가와 알파는, 역사의 끝과 시작은 그리스도 주님이십니다. 계절은 ‘돌고’, 시간은 ‘나아가고’, 우리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노아 시절에,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상이 갑자기 들이닥친 홍수에 허망하게 휩쓸려 가버렸습니다. 선택과 갈림길에서 붙들려간 자와 남겨진 자는 처지가 완전히 다릅니다. 창조를 거슬러 죄지은 인간에게 조화로운 무지개가 펼쳐지고 더 큰 희망과 자비가 주어지는 것은 새로운 생명으로의 초대이고 물질의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의 상승을 촉진합니다.

홍수 이후에도 마치 계절이 돌고 돌듯이 여전히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들 갑니다. 그럼에도 또한 여전히 홍수 대신 재림이 예고 없이 들이닥치리니, 먹고 마심, 장가와 시집이 예전 같지 않고 진일보해야 합니다.즉 깨어 기다리는 준비여야 합니다. 무엇을 또 누구를 기다리는 것입니까? 새 시대의 방주는 그리스도이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깨어 기다리는 교회는 그리스도 몸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면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탄생을 먹고 마심에서, 또 혼인의 일치에서 부단히 살아갑니다. 먹고 마시되 그 뜻이 다르고, 장가와 시집에 사랑과 일치, 친교의 소명이 깃들어 있습니다.

다시 대림이 시작됩니다. 깨어있고 준비하고 있으라는 지엄한 분부대로 도둑에게 털려도 안 되고 등잔에 기름이 없어도 곤란합니다. 시대의 도둑, 저잣거리 소음에 복음이 또 윤리가 털려도 안 되고, 신망애의 기름이 없이 어둠을 밝히기는 요원할 것입니다. 마침내 뫼비우스의 띠가 결승선이 되어 싹둑 끊어지는 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입니다. 홍수 때는 남겨지는 것이 좋았지만, 재림 때는 붙들려가는 것이 상수입니다. 종말의 아기 임금님께서 저기 오십니다. 계절은 돌고 시간은 나아가고 우리는 깨어 기다립니다.

 

 

 

     

이동성당 주임 | 천지만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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