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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공감하는 중에 하나는아픈 =싫은 입니다. 아픈 것을 즐겨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좀처럼 찾기 힘들고, 많은 사람들이 아픈 것을 피하려고 여러 대안을 찾습니다. 오늘날 몸이 아픈 것이 싫어서 병원을 찾듯이 과거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했을 때는 그분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싫은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예수를 찾은 사람들의 태도는 다양했습니다. 누구는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 했고(마르1,30), 다른 누구는 예수님께서 병을 낫게 하시고자 하시면 하실 있는 분이라고 고백(마르 1,40) 하기도 하였습니다. 반면 이와는 다른 태도로 일관하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증거나 표징으로 치유를 요구하였습니다(마르 8,11). 태도를 지닌 사람들 치유받은 이들은 전자였습니다. 전자는 아픈 것이 싫었고 그래서 아픈 것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면서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후자는 예수가 싫었고 시험하기 위해서 예수와 마주합니다. 대표적인 모습들 하나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치유를 통해서 복음의 정신을 드러내고자 하신 질문에 드러납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질문을 듣고 바리사이들은 예수를 없애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됩니다. 마음은 바로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표현할 많이 등장하는완고한 마음으로 통합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며 시험하였다.”(히브 3,7-9)

 

우리들이 아픔을 겪을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지 스스로 되돌아보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의 덕을 깊이 단련할 있습니다. 왜냐하면 태도의 중심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며 우리 중심에 삼는 태도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중심에 있기에 우리에게 닥친 아픈 , 싫은 것과 함께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있습니다.”(마르 1,40)라는 고백에서도 드러납니다. 반면 내가 드러나는 것이 중심이 되면 이런 고백은 어렵게 됩니다. 이때는 나의 생각과 조건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시험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싫고 아픈 것을 마주했을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을 계기와 마주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시고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싫고 아픈 속에서도 우리의 영혼과 삶에 도움이 있는 길을 발견할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우리를 아픔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기쁨으로 이끌 것입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이웃을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 너무나 아파서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할 있어야 하겠습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신성원 세례자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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