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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더 푸른 오월입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엔 새로 난 새순처럼 생명(生命)의 힘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래톱에 쌓인 나로 인해, 혹여 그 아이들이 때 묻을까 봐 조금은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렇게 보고 있노라면, 모든 생명이 더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생명을 두고 나의 말을 더 붙인다는 것은 궁색하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신비를 알고 싶을 땐, 그저 무심히 생명을 바라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알기 위해, 때때론 이런 시각도 필요합니다. 그동안 주변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훼손으로 속상해하던 내 마음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조촐히 자리를 잡으니 그늘진 나의 속 뜰이 한결 평온해짐을 느낍니다. 갈수록 생명이 훼손되는 일들이 하도 많아, 나무의 어린순 같은 생명들이 더 귀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도 생명이 훼손되는 일에 부닥쳤을 때, 우리는 더 높은 뜻으로 생명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생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주님은 항시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니 지난 일들에 너무 자책하지 말고, 우리는 더욱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생명을 위해 기도드려야 합니다.

 

주님의 비추심으로 볼 때, 모든 일은 사람을 보다 알차게 형성시켜 주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런 뜻을 귓등으로 듣고 말아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모든 생명이 더욱 건강해지려면, 주님의 사랑에 머물러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처럼 서로 사랑한다면, 신비로운 생명의 질서와 고요가 우리 속 뜰까지 울리게 될 것입니다.

 

해 질 녘에 꽃피운 달맞이꽃에서도 무한한 생명을 느끼며, 있는 모든 것이 소중한 친구가 됩니다. 주님처럼 서로 사랑한다면, 살아 있는 모 든 것은 충만한 기쁨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밤엔 달도 맑은 물에 와서 쉬었다 가고, 사랑하는 낮엔 새도 푸른 나무에 날아와 새끼를 치고 기쁘게 날아갑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김형수 사도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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