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치르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머니의 태를 열고 나온 첫 사내아이를 반드시 하느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맏이는 부모의 생명과 사랑의 결정체이며 장차 부모의 모든 유산을 받게 될 상속자이기에, 맏이를 바친다는 것은 자신들이 가진 가장 좋은 것, 가장 중요한 것, 더 나아가서 자신들의 모든 희망과 미래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봉헌과 성경에서 말하는 봉헌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봉헌은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일부를 떼어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고, 성경에서 말하는 봉헌은 하느님의 것을 내가 다시 그분께 되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 경우 전자는 주인이 우리 자신이고, 후자는 그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차이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기쁘게 봉헌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자기 것을 내어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압
니다.
반대로 우리가 가진 것들의 주권이 하느님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을 내어놓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집착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욥의 고백처럼 ‘주님께서 주신 것 주님이 도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흔쾌히 내어놓을 수 있고, 내어놓고 나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의 봉헌입니다. 사실 우리 것이 어디 있을까요?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요?
사실 우리 모두는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며 살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경험과 그로 인한 각성은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가진 모든 것, 가장 중요한 우리의 생명까지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고 그분의 손에 놓여 있음을 고백하게 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왔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진정한 의미의 봉헌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구 관리국장 신현욱(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