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 설교의 첫 부분인 오늘 복음은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도 잘 알려진 유명한 말씀입니다. 유명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난하고 슬프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박해를 받는데 어째서 행복하다고 하는가? 교우들 가운데도, 공감이 잘 가지 않는 어려운 말씀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법 합니다.
가난한 사람, 굶주리고 목마르고 슬퍼하는 사람, 박해를 받는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행복한 사람의 조건들을 가장 완벽하게 갖추신 분은 다름 아닌 바로 예수님 당신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영광을 감추시고 가난하게 사셨으며,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는 갈망으로 주리시고 목마르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구원의 말씀을 전하셨을 때에 제자들에게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요한 4,32) 하셨고, 십자가 위에서는 “목마르다.”(요한 19,28)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 때문에 박해를 받으셨고 평화의 길을 외면하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루카 19,43 참조).
예수님을 닮은 사람,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야말로 참 사람입니다. 내가 갖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것을 다 성취하면 행복하게 될까요? 내 마음에 맞는 사람만 세상에 남고 나머지는 다 사라져 버리면 행복할까요? 어쩌면 잠시 신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을 행복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세상 재물과 운수는 하느님께서 악인이든 선인이든 공평하게 누리도록 나누어주시지만 참된 행복은 오직 착한 사람에게만 주십니다. 그리고 참된 행복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그분과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되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에서 그분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고 넉넉해져서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교만하게 되기보다는 예수님과 함께 부족한 채로 있기를 선택하는 사람,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면서 자기 욕심을 채우기보다는 어렵더라도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 내 재주로 만사를 좌지우지하기보다는 하느님께 의탁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 다투어서 이기고 빼앗는 것보다는 주님 때문에 양보하고 져주기를 더 바라는 사람! 자,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비록 당장 100퍼센트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조금씩 이런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시겠노라고 말씀하신다면, 예, 주님, 원합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겠습니까?이것이 행복의 관건입니다. 하느님께 이 소망을 봉헌함으로써 우리는 행복의 길을 걷게 됩니다. 오늘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면서, 자기 욕심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의 섭리를 따르는 행복의 길을 다시 한번 선택하도록 합시다.
대덕성당 주임정태우(아우구스티노) 신부
산상 설교의 첫 부분인 오늘 복음은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도 잘 알려진 유명한 말씀입니다. 유명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난하고 슬프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박해를 받는데 어째서 행복하다고 하는가? 교우들 가운데도, 공감이 잘 가지 않는 어려운 말씀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법 합니다.
가난한 사람, 굶주리고 목마르고 슬퍼하는 사람, 박해를 받는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행복한 사람의 조건들을 가장 완벽하게 갖추신 분은 다름 아닌 바로 예수님 당신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영광을 감추시고 가난하게 사셨으며,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는 갈망으로 주리시고 목마르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구원의 말씀을 전하셨을 때에 제자들에게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요한 4,32) 하셨고, 십자가 위에서는 “목마르다.”(요한 19,28)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 때문에 박해를 받으셨고 평화의 길을 외면하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루카 19,43 참조).
예수님을 닮은 사람,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야말로 참 사람입니다. 내가 갖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것을 다 성취하면 행복하게 될까요? 내 마음에 맞는 사람만 세상에 남고 나머지는 다 사라져 버리면 행복할까요? 어쩌면 잠시 신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을 행복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세상 재물과 운수는 하느님께서 악인이든 선인이든 공평하게 누리도록 나누어주시지만 참된 행복은 오직 착한 사람에게만 주십니다. 그리고 참된 행복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그분과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되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에서 그분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고 넉넉해져서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교만하게 되기보다는 예수님과 함께 부족한 채로 있기를 선택하는 사람,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면서 자기 욕심을 채우기보다는 어렵더라도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 내 재주로 만사를 좌지우지하기보다는 하느님께 의탁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 다투어서 이기고 빼앗는 것보다는 주님 때문에 양보하고 져주기를 더 바라는 사람! 자,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비록 당장 100퍼센트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조금씩 이런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시겠노라고 말씀하신다면, 예, 주님, 원합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겠습니까?이것이 행복의 관건입니다. 하느님께 이 소망을 봉헌함으로써 우리는 행복의 길을 걷게 됩니다. 오늘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면서, 자기 욕심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의 섭리를 따르는 행복의 길을 다시 한번 선택하도록 합시다.
대덕성당 주임정태우(아우구스티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