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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쳐 독일을 중심으로 펼쳐진 철학적 기조인데 한 시대에 지배적인 지적·정치적·사회적 동향을 나타내는 정신적 경향이라고 합니다. 현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 원제-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소설을 통해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시대적 통증을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지금의 대상을증오의 시대라고 봅니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해 조롱과 저주, 분노를 가감 없이 표출합니다. 지금도 이슈(Issue)에 따른너를 죽여야 내가 살아남는다.’라는소모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예수님도 이번 주간 증오의 시간에 머물러 계십니다. 나와 다른 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심에 뿌리를 둔 무리와 선동된 군중들, 어쩌면 예수님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들까지네가 죽어야 우리가 산다.’라며 악다구니하고 있는 현장에 홀로 서 계십니다.

호산나!”(마르 11,9)를 외쳤던 환호(歡呼)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루카 23,21) 격앙(激昻) 사이에 끼어있는 변절의 시간을 더듬어 봅니다. 부족한 나를 인정하기보다 너를 깎아내리고(22,24), 사실을 부정하고(22,58), 너에게 떠넘기고(23,7), 공통의 이익을 위해 야합하고(23,12), 주체하지 못한 감정을 폭발시키고(23,18), 증오심을 부추겨 내 편을 만드는 계략이 통했던 시간입니다.(23,23) 예수님이 있어 행복했던 시간은 그렇게 잔혹하게 짓밟혔습니다.

여전히 지금도 살아남기 위해 예수님을 팔아먹으며 변절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예수님처럼 내어놓지(22,19) 않고, 기도하지(22,41) 않고, 위로하지(23,28) 않고, 용서하지(23,34) 않고, 사랑하지(23,43) 않고, 희생하지(23,46) 않으면서 예수님의 가면(假面)을 쓰고 내 말이 정의라며 겁박하는 사람들입니다.(23,5) 예수님 없는 개인의 신념은 같은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박수받을지언정 하느님 아버지의 환대는 받지 못합니다. 경험하듯 언젠가는 내가 뱉은 말에 나의 치부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22,61) 결국 믿고 따랐던 사람들에게 혼란만 가중되게 됩니다. 신앙인의 식별은 이런 대목에서 작동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이하게도 예수님은 비참한 처지에서 끊임없이 강요받았음에도(23,3;9) 세상이 원하는 시원한 답을 하지 않으시고(23,9), 하느님 나라로 가는 당신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23,46) 매 순간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는 신앙인의 역할을 떠올려 봅니다. 시대가 필요한 말, 시대가 보고 싶은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것은 증오심을 품은 세상 것에 휘둘렸을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살아낼 때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런 말과 행동은 변하지 않습니다. 말과 행동의 힘은 그런데서 나옵니다.(23,47) 곧고 푸른 팔마(palma) 나무처럼.....

 

 

 

 

 

까말돌리수녀원 전례담당 김호균(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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