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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이었습니다. 주일 저녁 미사를 마치고 여느 때처럼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주차장 쪽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급발진한 자동차에 교우 한 분이 치어서 심하게 다치는 불상사였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미사참례자 가운데 의료인이 계셔서 응급처치를 했고, 환자는 응급실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는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처음 겪는 그 상황이 너무 두려워서 차마 달려가지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마음만 졸일 뿐이었습니다. 며칠 지나서 병실을 방문했는데, 보호자의 날선 반응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위기 상황에서 정신도 없을 때 신부님은 멀리서 우리를 바라볼 뿐, 와서 기도하지도 위로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어떻게 제대에서 사랑을 말하고 사느냐.’는 지적이 서늘하고 날카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보면 쉽사리 다가가지도 못하는 제 나약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도우심은 고통과 무력함을 상처로만 끝나지 않게 해줍니다.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의 어둠을 통해서 빛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주시지요. 저도 그 계기를 통해서 제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의 근원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고, 또 임상사목교육(CPE)의 도움을 받아서 두려움과 불안에 직면하는 작업과 훈련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그 덕에 지금은 환자분들의 고통과 만나는 원목의 소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환자분들과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환자의 고통에 다가갈 수 있는 힘과 용기도 점점 더 커져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혹시 지난날의 고통스러운 경험 때문에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십니까? 고통은 우리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계기이지만 동시에 그 약함을 넘어서 더 깊은 사랑에로 나아가게 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회피하거나 위축되지 말고 부활의 빛을 믿고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 봅시다. 그리고 새로운 계명에로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초대에 함께 응답해 봅시다.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고 전진합시다! 그러면 어둠이 걷히고 우리는 빛으로 나아갈 겁니다. 예수님이 그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와 함께 걸어가시니 두려울 게 없습니다.

 

 

 

 

병원사목부장 이태우(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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