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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라고 불리는 이 말씀은 우리 교우분들에게 어떻게 들리고 있습니까? 혹시착함선함의 교과서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착하다혹은선하다라는 말은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덕목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소 애매모호한 표현이 되어가고 있고, 그 의미와 범위가 너무나 두리뭉실하여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심지어 이는 너무나 주관적인 판단의 잣대가 되어 오히려 사람의 삶과 마음을 짓누르고 짐이 되어 보일 때도 있어 보입니다.

 

오늘의 복음이착한 사람은 이러한 사람이다라는 것에서 시작하여착한 사람은 이래야 한다라는 요구로 이어진다면, 이는 옳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사마리아인의 행동을 앞세워 사람들을 그저착하다라는 울타리에 가두어 놓으려 하는 것과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너무나 다른 입장에 서 있습니다. 흔히 곤란한 경우에 우리는 종종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자라고 합니다. 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한 요구를 하는 이들은 무엇인가 필요한 사람, 무엇인가를 바라는 사람, 쉽게는 아쉬운 사람 혹은 바로 약자입니다.

반대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 또는 강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래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손해 볼 일을 왜 해야 하는지 혹은 그것을 강요할 수 있는지, 나아가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것, 자신의 것을 내어 준다는 것,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앞세운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착하다라는 말로 한정 짓거나 가두어 버릴 수 없는 마음이자 행동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착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아니라 용기 있는 이의 위대한 삶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만나게 된 사마리아인은 세상이나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보여 주기 위해서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 그리고 봉헌입니다. 사마리아인의 그 모습은 바로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참다운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지금도 우리는 교회 안에서사랑이나희생그리고봉사헌신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이 말들은 다 좋은 말들입니다. 하지만 사랑과 희생 그리고 봉사와 헌신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행하는 것이자 행해야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이들을 향해착하다혹은착해야 한다라는 말로 굴레를 씌우지도 말고, 자기 스스로 가두지도 않으며, 용기 있는 현대의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산성당 주임 안병권(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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