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년 전 이런저런 이유로 고령 어느 시골에서 휴양하면서, 얼치기 농사꾼 행세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치료차 한 달에 두 번 경주에 있는 한의원에 갔는데,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습니다. 마을에는 하루에 버스가 네 번밖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령 버스정류장까지는 승용차를 몰고 가서 세워놓고는, 대구 서부정류장으로 버스를 타고, 대구에서 또 경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경주에 내려서 또 시내버스를 타면, 기다리는 시간 합쳐 대략 네 시간가량 걸립니다. 그래도 고령에서 대구, 경주를 왕복하는 동안 세 시간 정도는 책을 볼 수 있어서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보는 것처럼, 저는 버스에서 책을 보는 게 집중이 잘 되었거든요.
그날도 늘 하던 대로 대구까지 갔습니다. 경주행 버스표를 끊고 잠시 기다렸다 버스에 오른 다음 창문 유리창 커튼을 가리고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버스 여정은 대략 한 시간 정도. ‘다 왔겠구나’ 싶어 커튼을 젖히는데 순간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낯익은 창밖 모습이었지만 분명 경주는 아니었습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에서 내려보니 ‘이런!’ 포항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멍하고 뻥 해졌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역추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차표에는 분명 포항행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천천히 다시 생각해 보니, 경주로 가는 표를 끊는다는 것이 포항으로 가는 표를 끊은 것이고(포항의 본당에서 사목경험이 있었기에), 포항행 버스를 경주행 버스로 착각하고 탔고(누군가에게 묻지도 않았고), 커튼으로 가렸으니 밖은 보이지 않았고, 내릴 때까지 마음은 경주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착각은 너무도 당연히 이루어졌습니다.
마침 토요일이라 진료 시간을 맞출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포항 지인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경주 시외버스정류장까지만 태워달라고.(그날은 포항에서 대구로 오는 버스 시간도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경주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역순으로 그냥 그렇게 고령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한번이라도 의심을 해 보았다면, 한 번이라도 확인을 해 보았다면, 커튼이라도 닫지 않았다면, 분명 대구 어디선가 중간에 내릴 수 있었을 것인데. 착각과 고집, 잘못된 확신이 저를 엉뚱한 목적지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3)는 말씀이 있습니다. 소유가 어디 재물만이겠습니까? 인생에 켜켜이 쌓여온 주관과 확신 또한 모두 저마다의 소유가 아니겠습니까?
복음은 ‘다시, 처음부터’ 생각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정평성당 주임 한인갑(베네딕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