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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빛이 구세주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 구원의 별빛에 대한 네 종류의 반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루살렘 시민들입니다. 그들은 구세주의 별이 뜬 것을 모릅니다. 먹고사는 문제, 일상사에 바빠서 중요한 주님을 찾고 함께함에는 무관심했습니다. 둘째는 헤로데입니다. 그에게 하늘의 별빛은 구원의 표징이 아닙니다.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없애려고 죄 없는 이들에게까지 폭력을 씁니다. 셋째는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입니다. 그들은 별빛의 의미와 그 별이 어디서 멈추게 될지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경배하러 찾아갈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그 별빛은 무의미하거나 적대적이거나 하나의 지식일 뿐 구세주와 만남의 초대가 되지 못합니다. 반면 동방 박사들은 다릅니다. 험한 광야를 지나면서 구세주의 별빛을 찾았고 따라갑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동방 박사들이 귀한 선물을 드리며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데에는 구세주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역시 힘든 일상생활, 광야와 같은 메마른 일상생활의 여정을 거쳐 성전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간절함을 지니고 있습니까?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고 미사에 참례합니까?  어떤 선물을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만나고 더없이 기뻐했던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 역시 진심으로 기뻐하며 주님을 만나고 성체를 모시고 주님 안에 머물러봅시다. 그 기쁨으로, 그 힘으로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주님을 드러내는 별이 되면 좋겠습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변재홍(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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