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오 대교황은 “그리스도인이여, 그대의 고귀한 품위를 깨달으십시오.”라고 권고했습니다. 이 깊은 울림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셨다”라는 복음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자, 그분의 크신 사랑이 새겨진 ‘살아있는 성경’입니다. 곧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신비를 품은 성사적 존재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 거룩한 품위는 나 자신을 넘어 타인과 이웃,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까지 뻗어갑니다.
영성가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결코 타인의 신비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신비 앞에 신발을 벗고 머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사적 존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차가운 ‘분석’이 아니라 따뜻한 ‘만남’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온전히 이해하기 벅찬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아이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아이가 품은 하느님의 신비가 너무도 깊고 아득하기 때문입니다. 신비는 파헤쳐야 할 과제가 아니라, 삶 속에서 경이롭게 마주하고 함께 품어가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를 향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 또한, 이성으로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여정 속에서 그 숨결을 느끼고 만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해 두신”(1코린 2,9) 그 놀라운 은총을 온 마음으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곁에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사람들을 바라봅시다. 특히 청소년 주일을 맞아, 신비를 품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영혼 앞에 잠시 머물러 봅시다. 우리가 서로를 거룩한 성사로 대할 때, 이 세상은 비로소 은총이 충만한 거대한 성전이 될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신비를 품은 거룩한 성사적 존재입니다.
젊은이사목대리구 사무국장 | 권대진(다마소)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