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작년 8월에 저희 본당 고등부 1, 2학년 학생 18명을 데리고 마카오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첫날 우리는 김대건 신부님의 발자취를 찾아갔습니다. 한국 최초로 세 명의 신학생이 1836년 12월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만주와 중국 대륙을 종단하여 6개월간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 마카오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장소에 우리 고등학생들이 찾아간 것입니다. 화려하지 않은 마카오의 외곽, 성 안토니오 성당 맞은편에 그 장소는 소방도로 정도의 차도와 높지 않은 낡은 건물들이 소박하게 자리하였습니다. 그 옛날 극동대표부의 건물은 사라지고 4, 5층 정도의 상가 건물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8월의 덥고 습한 날씨, 눈에 보이는 순례의 장소는 없었지만, 우리는 무더위보다 뜨거운 심장의 울림과 말로 다 하지 못하는 숙연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제의 삶이라는 성소를 품고 목숨 건 만리길을 걸어 도착한 그 장소에 180여 년이 지나서 당신 또래의 아이들이 당신의 발자취를 찾아오리라고는 김대건 신부님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도로변 조용한 곳에 김대건 신부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이 멀고도 낯선 곳에서 온갖 어려움 가운데 신학을 배우고 성소를 키우며 과연 어떤 기도를 바치고 어떤 한국 교회를 꿈꾸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인으로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첫 방인 사제의 길, 많은 사목활동과 업적을 기대하였건만 1년 남짓 사목활동은 순교로써 마쳐집니다. 수고와 능력과 열정을 가지고 모든 준비를 마친 첫 방인 사제의 안타까운 순교는 인간의 생각과는 다르게 우리 후손들에게 계속해서 하느님을 만나는 도구가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한국교회와 한국의 모든 성직자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율곡성당 주임 | 김성은(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