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수천 개의 씨앗이 달려있습니다. 이 씨앗들은 다시 나무로 자라 수천 개의 씨앗을 품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에는 숲이 들어 있습니다. 벼도, 밀도, 배추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는 모두가 먹고도 남을 만큼 풍요로운 ‘하느님 나라’이자, ‘혼인잔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받은 잔치에서 이렇게 굶주리는 생명이 많은 이유는 우주와 자연과 생명을 잇는 창조의 그물망에 자라난 탐욕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풍요로운 잔치를 함께 나누는 손님인가?” 아니면 “잔칫상을 독차지하려는 암세포인가?”
씨앗은 공기처럼 모든 생명을 위한 ‘공공재’(公共財)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씨앗은 거대한 종자 회사에서 사 와야 하는 상품이 되어버렸습니다. 특히 IMF 외환 위기 때 우리나라 종묘사들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글로벌 다국적 기업에 줄줄이 넘어갔고, 우리 땅에 자라던 토종 씨앗들도 거의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늘날 기후 위기, 전쟁, 석유 공급 중단 등으로 농업 위기가 닥친다면 식량은 무기가 될 것이고, 식량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심각한 생존의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본래 농부는 씨앗을 품고 다루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농부에게서 씨앗을 빼앗자 농업은 다국적 기업에 종속되어 버렸습니다. 농부들은 작물을 얻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매년 유전적으로 조작된 씨앗을 종묘 회사로부터 구매해야 하고, 그 씨앗에 맞춘 특정 비료와 살충제와 제초제도 세트로 사야 합니다.
제31회 농민 주일을 지내며 생명을 살리는 농사가 얼마나 신성하고 소중한 것인지, 기후 위기 시대에 식량 주권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그리고 토종 씨앗을 보존하는 일이 얼마나 시급한지 깊이 성찰하며 이 땅의 생명을 지키고 전파하기 위해 묵묵히 걸어가시는 모든 분께 깊은 경의와 감사를 표합니다.
생태환경 및 농어민사목부 부장 | 성용규(도미니꼬)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