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듯, 이 일방향성(一方向性)은 우리로 하여금 하루의 성찰뿐만 아니라 일생의 끝도 내다보게 만듭니다. 이 길의 끝에 결국 맞닥뜨릴 노쇠함과 죽음은 세상에서 흔히 그러하듯이 쇠퇴와 소멸로 볼 수도 있으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지상 삶을 너머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며, 그 희망을 주신 분께로 가려고 애를 씁니다. ‘나’의 존재 유무와 관계없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이 넓은 세상에서 ‘나’라는 개인은 특별하지도 않고, 별 의미 없게 여겨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없다면 이 거대한 우주도, 깊고 심오한 온갖 이론과 학설도, 아름다운 사람들도 다 소용이 없으니 이를 인지하는 ‘나’는 참 중요합니다. 나의 부재, 죽음은 크나큰 사건입니다.
이 소중한 ‘나’를 바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의 태 속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듯, 우리가 오늘 기리는 순교자들은 하느님을 알게 되니, 세례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고, 목숨을 바칠 만큼 깨달음을 실천할 용기와 사랑도 가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야 한다.”라고 하십니다. 스위스의 신학자 발타사르도, “인생에서 무엇을 열망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바쳐야 하며, 자신을 그 값으로 지불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피를 요구하는 무도한 권력은 없지만, 피 흘림 없는 이 신앙 여정에서도 매 순간마다의 선택과 절정서 언제나 하느님과 나를 위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우리는 그 옛날, 한국 순교자들이 간절히 바치신 기도에 대한 응답이듯, 또 하나의 응답을 위하여 지금, 매 순간 하느님을 선택하는 결정을 하고 있는지 되짚어보는 대축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최의정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