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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 복음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내가 평화로우면 성령의 이끄심을 잘 느낄 수 있는 데 반해, 평화롭지 않으면 그렇지 못합니다. 이는 마치 머리 속이 복잡할 때에 다른 생각거리를 받는다면 신경질만 나거나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경우나, 배가 불러 죽겠다 싶을 때에 다른 먹거리를 두고 구미가 당기지 않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보호하심'에 힘입으려면 평화로워야 합니다. 게다가 성령께서 채워주실 평화의 선물을 담아내기 위해 내 안을 비워낼 필요성도 있습니다. 마음이 괴롭고, 삶이 복잡하고, 힘든 일이 너무나도 많아서 평정심을 잃어버렸다 싶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마음 속에서나 기억 속에서 버리고 비워야 할 것들을 담아두고 있기 때문에 평화를 되찾는 것이 더딜 지도 모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 중 한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지금도 강론을 쓰고 있습니다만, 강론이 잘 안써질 때가 있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일종의 슬럼프처럼 강론준비가 부담스럽고, 강론은 매일 숙제처럼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다른 일로 바쁜 때에는 밤늦게 귀가해서야 강론준비를 시작하는데, 가뜩이나 피곤한 가운데 마음만 급할 뿐 강론이 안써지면 어떨까요? 새신부 때에는 다른 일로 분주하다가 밤 11시가 넘어서 강론준비를 시작했다가 꼴딱 밤을 지새우며 강론쓰기를 시도하다 바로 새벽미사를 봉헌하러 갔던 기억도 나네요. 이럴 때는 강론을 준비할 생각만 하면 마음만 급해지고, 미사시간이 너무 빨리 돌아온다 여겨지기도 합니다. 강론을 준비하면서 마음의 평화는 달아나 버린 것이죠.

  그렇게 꾸역꾸역 강론준비를 하며 한숨을 푹푹 쉬어대다가, 대충 마무리해서 미사를 드리고 나면 그만이다 싶은 생각으로 갈등하다 어느새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 '내가 정작 강론준비를 해야 한답시고 다른 일을 줄일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강론준비의 부담을 피하고만 싶어했지, 정작 강론준비가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고자 다른 일을 줄일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그 가운데에는 사람들과 만나서 밥먹고 술마시고 수다떨고 노는 그런 것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줄이거나 조절할 수도 있는 것인데 이런 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 강론준비할 시간에 양보할 생각없이 지내온 것이 아닌가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간들을 조금 줄이고 강론준비할 시간적 여유를 좀 더 두었더니, 강론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불평과 핑계는 사라지고 그러니 강론준비하는 시간이 좀 더 차분해졌습니다. 쫓기는 마음으로 쓰지 않으니 기도하면서 원고를 쓰게 되고, 복음말씀의 메시지가 금방 눈에 들어오지 않거나 머리가 팽팽 돌아가지 않아도 그 시간 자체를 즐기게 되기도 했습니다. 교우들도 아신다고 하잖아요. 강론을 들어보면 저 신부가 기도를 하는지, 강론준비를 하는지 등을 말입니다.

 

  저의 작은 경험담에서처럼, 성령께서 이끄실 때에 그 움직임을 느낄 수 있으려면 평화를 간직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게 될 때, 믿음으로 더욱 굳건해져야 할 때를 놓칠까봐 그들에게 평화를 선물로 주시고 미리 안심시켜 주십니다. 

  우리도 미리미리 스스로에게 평화를 선물로 주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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