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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사람이 건강할 때는 건강함의 소중함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병들고 아프면 비로소 건강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건강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도 가지게 됩니다. 건강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각자 가지고 있는 많은 능력 혹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잠재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기회’ 혹은 ‘때’를 만나야 하는데, 때로는 그런 기회를 접했을 때에도 어렵고 힘들고 귀찮다는 등의 이유로 그 ‘때’를 기피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제가 신학생 때 일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몇 년전만 해도 저는 아무도 못말릴 만큼 주위가 산만한 녀석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험기간만 되면 동기신학생들에게 핀잔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신학생들에게 시험은 신부가 되기 위한 수업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제적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꼭 통과해야 할 난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같은 방에 30명이 모여 앉아서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공부하는 분위기가 무척 낯설고, 그런 분위기에서는 더욱더 공부하는 것이 답답하고 싫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복도를 거닐며 왔다갔다하다가, 휴게실에 앉아서 책을 보기도 하고, 휴게실에 잠시 쉬러 오는 사람들과 짬짬이 놀아가며 시험공부를 했습니다. 나중에는 하도 따분한 나머지, 사람들이 어떻게, 무슨 공부를 하는가 이리저리 다니면서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이러니까 핀잔을 받을 만도 하지요.

  그런 저에게 어느날 한 형님이 말했습니다. “동현이 너는 공부를 좀 열심히 해야 된다.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잘 써야 하지 않겠냐?”

 

  당시에는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별로 내키지 않는 것이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부가 되면 공부하는 것 말고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참 많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부가 되면서 생각해보니 조금은 후회가 됩니다. 막상 다른 사람들보다 나에게 잘할 수 있는 무엇, 교회를 위해 좀더 쉽고 신명나게 봉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결국 공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체력이 좋고 두뇌회전이 빨라서 열정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더 힘차게 사목한다는 것도, 특별한 재능이 있어 상담을 잘하는 신부가 되는 것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하는 것도 저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은 것을 돌려주어야 하고, 많이 맡은 사람은 더 많이 내어놓아야 한다”는 말씀은 이런 저의 생각에 확신을 줍니다. 여러분도 봉사할 수 있고, 기력이 있고, 기회가 주어질 때에 나의 신앙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 기쁘게 봉사할 수 있다면 우리 공동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교회가 좀더 활기있고 사랑이 충만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행복 아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능력들을 나의 소극적인 마음가짐으로 인해 썩혀두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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