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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인해 형성된 성가정(聖家庭)의 모범과 신비를 경축하는 축일입니다. 사실 '성가정'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답답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만, 사실 우리는 함께 구원받기를 도모하는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회'(敎會)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모임, 공동체'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의 가정 안에서 함께 구원을 도모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임과 동시에 성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공동체와 더불어 구원을 도모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해답이 성가정의 표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나 성숙한 인간이 되어갑니다. 가정공동체를 비롯한 소속 공동체로부터 받은 사랑과 상처, 경험들을 통해 사람은 자기완성을 향해 변화되어 갑니다. 이는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을 주고받지 못하고 결핍되면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갈수록 현대한국사회가 사랑의 결핍을 다른 무엇으로 대신 충족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조하는 듯한 경향이 있는 듯 하다는 점에서는 우려스러운 면도 있지 않나 합니다.

 

  사실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부모들의 이혼으로 인하여 가정이 붕괴됨으로 자녀들이 방황하게 되는, 소위 결손가정도 많습니다. 물론 아이들에게 부모들의 상처를 물려주지 않고자 노력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시지만요. 더군다나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는 이런 아이들이 경제적 약자가 되어 생겨나는 폐해까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어 걱정입니다. 그래서 바람직한 가정, 가정에서 자연스레 몸에 익히고 배울 것들을 물려받는 환경은 더욱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서로 나누고 느끼며 동시에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거나 물려주는 법을 성가정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신부들끼리 하는 이야기로, 한국사회의 현실적 특징상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관면혼배'를 너무 쉽게 허용한다는 것이 오히려 성가정의 형성에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따라서 성가정 공동체를 더욱 많이 탄생(혹은 복원)한다는 것은 현대의 한국교회에서는 매우 시급한 과제임이 분명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사와 성사를 비롯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가정을 통하여 교회공동체를 성장시키십니다. 그래서 가정 안에서 신앙의 도리를 자연스레 배우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비록 하느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다 하여도, 하느님을 믿는 부모님을 통하여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마땅히 여기는 도리를 배우고 나면 이후에 그러한 교육을 통해서 뒤늦게라도 하느님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내 아버지, 어머니,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도리'이기에 효성을 다하는 것과 같이, 하느님의 뜻을 지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법을 배우는 곳이 성가정일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집회서 말씀처럼요.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여기지 않고 존중하려 애써야 할 것입니다. 머리로는 알아도 잘 안되는 몫이라고 많은 부모님들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이죠.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께 맏아들을 봉헌하는 예수의 부모들의 모습에서 이러한 몫을 상기하게 됩니다. 또한 부부는 사랑과 존중으로 맺어진 가장 밀접한 이웃관계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말하듯,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이루어야 할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내 이웃을 대할 때, 그 이웃을 어느 만큼 또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부부지간의 관계를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콜로 3,12-17)

 

  우리의 가정이 모든 부모와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는 데에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하여,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무한한 사랑과 구원의 은총의 참모습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기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 모든 교우들과 이웃들의 가정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일치하는 성가정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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