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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은 주님의 성탄으로부터 40일째 되는 날로서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봉헌한 사건을 기념하는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특히 보편교회는 이날을 주님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봉헌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날로 지냅니다. 아울러 세상이 죄악의 어둠에 물들어 있을 때에 이를 환한 빛으로 비추어 구원으로 인도하고자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하느님의 도구이자 제물로 봉헌하셨음을 상징하는 도구인 '초'를 축복하여 한해동안 사용하는 관습도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공동체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수도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시기를 바라면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축성생활의 날'의 의미를 전하는 한국교회 (경남)고성 성 올리베타노 수도원장님의 담화문으로 오늘 강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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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온 우주 삼라만상을 통하여 찬미 받으소서!

 

경애하는 이 땅의 모든 축성 생활자 여러분!

세상사람들은 우리를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느님의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올해는 어디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살면 좋을까요?

 

몇 년전 미국 하버드 대학의 교수 한 분이 훌륭한 미래의 삶을 위해서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친절”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인데도 친절이 부족해서 서로가 경쟁만 하고, 나라끼리는 전쟁을, 공동체는 이기주의로 분열되어가고 사회는 조화가 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친절한 사람만이 미래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으며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미국 컬럼비아 의대 정신 의학 교수인 켈리 하딩 박사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녀에 따르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가가 건강 문제의 본질이며 사람은 지지받지 못하고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번아웃(burnout-심신이 완전 지친 상태)이 된다고 합니다.

좋은 의사보다 좋은 상사가 건강에 더 중요하며 나쁜 상사를 만난 사람이 심장병 등으로 갑자기 사망할 확률이 3~6배나 훨씬 높다고 합니다.

가족끼리 서로 매일 포옹만 해도 감기 걸릴 위험이 32%나 낮아지고 친절한 사람이 키운 식물이나 동물이 병에 훨씬 적게 걸린다고 합니다.

위안을 주는 모든 손길은 생명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친구가 어깨를 토닥여주는 행위부터 포옹, 악수, 미용사의 헤어 손질까지도 병에 걸릴 확률을 낮춰준다고 합니다.

더욱이 부모가 다정하게 아이들의 눈을 깊게 바라보고 애정을 담아 웃고 누워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산책을 하며 가끔 아이를 온몸으로 힘 있게 안아주면 설사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게 태어났거나 후천적 유전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해도 그것을 극복하고 아이는 다른 사람으로 성장한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만 이런 변화를 하겠습니까?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인 장발장도 친절한 성직자 한 분에 의해서 인생이 완전 바뀌었잖아요?

 

친절은 이렇게 병도 낫게 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주위는 과연 어떠한가요? 잠시만 돌아보면 얼마나 차갑고 불친절한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지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자녀들의 병문안을 기다리다가 아무도 오지 않자 이사를 간 딸에게 전화를 걸어 주소를 물었더니 “아버지! 이사간 주소를 아시면 찾아 오시려고 하시죠? 가르쳐 드릴수가 없어요” 하고 딱 전화를 끊더라는 겁니다. 얼마나 서러운지 할아버지가 대성 통곡을 하셨다고 합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이렇게 불친절한데 물질적으로만 잘 살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부모님에게는 자식을 보는 ‘낙’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또 한 번은 도시에 있는 불교 포교원을 외국 손님들과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4층 건물인데 각 층마다 불자들이 편하게 드러누워있기도 하고 모니터로 스님의 법문을 듣기고 하고 담소를 나누고 음식을 먹는 등 모두가 나름 힐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큰 스님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신도들을 만나러 나오니까 신자들이 모두 모여들어 사진을 찍고 야단법석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저는 그때 ‘불교에서도 성직자 대접이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뒤에 이 이야기를 스님들과 아주 친하게 지내시는 원로 수녀님 한 분께 말하였더니 그것은 성직자 대접이 아니고 신도들이 스님들을 아버지처럼 정말 편하게 생각하고 좋아서 그렇게 따르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천주교 신부님들과 수도자들은 너무 까칠해서 사람들이 가까이 가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꼭 고쳐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도 그렇게 따뜻하질 않습니다. 여러 수도회의 젊은이들이 양성 기간 중에 탁발체험을 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때 돌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청하면 절이 제일 후하게 해주고 다음은 개신교회,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아예 쫓겨나기가 일쑤라고 합니다.

늘 하느님의 사랑을 외치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있는 교회가 이러면 이상하죠! 사회가 차갑다면 우리 축성생활자들이 따뜻하게 덥혀야 합니다. 우리 축성생활자들은 하느님의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라도 종교의 유무에 관계없이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하느님의 사랑만 전해줍니다. 그 사랑은 바로 우리의 친절로서 전해집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말로 친절하게 인사할 수 있고 병이나 외로움에 지친 분들에게 진심어린 위로의 말을 해줄 수 있습니다. 아주 높은 분들이나 돈이 많은 분들께도 서슴없이 다가가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줄 자선금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떤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봉쇄수도원의 수도자라면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도록 친절한 기도를 열심히 바칠 수 있습니다.

 

친절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젊고 건강하고 나이 들고 병듦과 상관없이 언제나 주님의 힘으로 모두에게 친절할 수 있습니다. 2023년 올해 하느님의 친절을 모두에게 마음껏 선물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며 이 땅의 모든 친절하신 주교님들께 강복을 청합니다.

 

 

2023년 2월 2일 축성생활의 날에 

한국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 유덕현 야고보 아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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