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루카 5,12-16)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나병환자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청원하는 말이 좀 이질적으로 들립니다. 그는 예수님께 이렇게 청합니다 :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루카 5,12)

  그가 예수님께 건넨 말은 ‘주님! 저를 낫게 해주십시오.’라는 청원이 아니었습니다. 나병환자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나다닐 수 없는 사람이었고, 자칫하면 돌을 맞아서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었기에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만한 목적이 있을 테지요. 누구나 그 목적이 '병의 치유'에 있을 것임을 짐작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말을 이렇게 에둘러서 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완곡한 표현을 했다기보다는, '병의 치유'를 바라는 이 나병환자의 관점이 달랐음에 주목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치유받고자 하는 청원'으로 인해 결행한 예수님과의 만남을 병환으로 고통받는 자신에게 일어날 결과만 두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치유의 행위를 이루시는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병을 고쳐달라'고 말한다면 도움을 받고자 하는 자신의 생각에만 머물러 있었을 테지만, 병의 치유라는 이유로 인하여 자신을 마주하게 될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그분에게 자신과의 만남이 어떤 의미인가를 함께 생각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을 견지할 수 있는 이유 역시도 "믿음" 때문입니다.

  용하다고 소문난 예수라는 사람을 찾아가면 혹시라도 자신을 고쳐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아니면 말고', '밑져야 본전' 같이 자신이 얻을 결과에만 초점을 둔 생각입니다. 그러나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기적에 관한 소문을 통해 그분이 이루신 일의 결과만을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찾아가서 만나고픈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았던 듯 합니다. 그러니 '하고자만 하시면' 곧 예수님의 권능에 대한 의심이 없다는 믿음과 그분이 불쌍한 자신을 두고 보여줄 자비심을 지닌 분이라는 인식을 드러냅니다. 그러자 과연 예수님께서는 평소 당신께서 사람들 사이에서 '하고자 하신 것'을 먼저 원했던 나병환자에게 그대로 선물을 베풀어주십니다 :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5,13)

  우리가 청원하는 기도 속에서 미처 놓칠 수 있는 믿음, '하느님의 사랑과 권능에 의지하는 마음'을 이 나병환자에게서 배우게 됩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청원이 단순히 어떤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주술(呪術)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음을 확인하고픈 바람'의 표현이 될 수 있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