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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어쩌다 보니 또다시 코로나 여파로 주변이 어수선하네요. 혹시 겨울철이 되어서 김장을 하려다 미처 못하신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은 먼저 김장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합니다.

 

  제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시절에 해당하던 때에, 저희 집에서는 12월 초,중순이 되면 어머니께서 김장을 하시곤 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김장을 하지 않는 집이 드물었고, 적어도 이른 봄철까지 김장김치를 먹을 만큼 김장을 했으니 그 분량도 훨씬 많았던 듯 합니다. 겨울철 어느날 저녁 무렵에 작은 베란다에 큰 대야가 나와있고 거기에 40-50포기의 배추가 둥둥 떠다니면 내일이 'D-Day'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음날 오후에 학교를 다녀오면 거실 바닥은 온통 김장재료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때가 좀 싫었습니다. 김장양념에 들어갈 마늘을 까는 손이 부족하면 거기서부터, 특히 마늘을 손절구로 빻는 것은 온전히 제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껏해야 돕는 일이 그것 뿐이었지만, 어린 마음에는 몇 시간을 마늘을 끼고 앉아서 빻고 있노라면 팔이 너무 아파서 싫어했던 듯 합니다. 또 한가지는 김장이 끝나기 전까지는 저녁밥을 얻어먹지 못할 것을 알기에, 늦은 저녁을 먹는 것도 그리 반갑지는 않았던 듯 합니다. 그래도 갓지은 밥에 김치 얹어서 먹을 때의 쾌감은 포기할 수 없었죠.

 

  시간이 흘러 제가 중국에서 일하고 있던 어느 때에, 김치를 담가먹어 본 적이 - 배추김치는 두어 번 실패하고서는 더이상 시도하지도 않습니다만 - 몇 번 있습니다. 배추도 사다가 절여야 되고, 배추속에 넣을 양념도 만들어야 되고, 절인 배추를 씻고, 배추 속에다 양념을 일일이 치대어주어야 합니다. 이렇듯 김장하는 방법에 대해서 얼추 알고 있습니다만, 만약에 누가 저더러 김장할 줄 아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제가 김치담그는 법을 머릿속으로는 다 알고 있다고 하고, 어머니가 김치담그시는 것을 몇 번 보았다고 하더라도, 김치를 잘 담글 줄 안다고 이야기하면 많은 분들이 웃으실 겁니다. 사실 어느 때 우리 눈에는 능숙하게 척척 김치를 담그시는 우리네 어머니들도 젊은 어느 시절을 돌이켜본다면 김치담그는 것이 지금처럼 능숙하고 쉽게 잘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일년, 이년이 지나고 십년, 이십년이 지나면서 해마다 김치를 몇 번씩이고 담그다 보면, 김장하는 것은 큰 일이고 힘이 드는 일이기는 하지만 어느새 익숙하고 으레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마련입니다. 배추는 어떤 것을 골라야 하며, 소금을 어느만큼 써서 몇 시간이나 절야야 할지, 무슨 재료를 넣으면 양념이 맛있는지, 젓갈은 무엇을 쓰면 좋은지 등등...... 실제로 김장을 해 본 사람과 곁눈질로나 책으로 배운 사람은 그만큼 무언가를 할 때에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자신감이 틀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실제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배워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도록 이끌어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도록 이끌어주는 표지판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수없이 많은 가르침도 내가 하나라도 제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야고보서에서 야고보 사도도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저 좋은 말씀으로만 들린다면, 다른 책에서 누가 써놓은 '좋은 글'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 말씀이 하느님의 살아있는 말씀이며, 나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그 말씀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거나 나눔을 하더라도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지침이 되는 그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내 삶이 하느님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 하느님 나라의 시민의 방식으로 변화되어 가도록 노력하기까지 연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꾸준히 노력함으로써, 김치를 능숙하게 담글 수 있게 된 것처럼, 하느님 말씀을 듣고 공부하고 묵상하는 것이 내 삶에 생기를 돋구어주고 신앙의 참맛을 알게 해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실천과 꾸준한 노력이 없이는, 우리의 신앙은 어떤 지독한 어려움 앞에서는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쉽게 무너져 내리고 말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로 집에 갇혀있는 이 생활이 또다시 시작될 때 답답하시기도 하겠으나, 매일의 전례독서나 혹은 다른 성경의 말씀을 접하면서 그 말씀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더욱 골똘히 살펴보는 노력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많아진 셈이 아닐까요? 이미 그와 같은 노력을 하시는 분들도 적잖이 계시겠으나, 말씀의 뜻을 실천의 결심으로 연결시키는 훈련을 더욱 열심히 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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