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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7-48)

 

  오늘 복음의 내용은 ‘마리아의 노래’라고 불리는, 교회의 가장 훌륭한 찬송기도 중의 하나입니다. 교회의 대표적 시간전례인 ‘성무일도’의 저녁기도때마다 바치는 찬미가이기도 하고,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까떼나(catena, ‘사슬’ 혹은 ‘끈’이라는 뜻)를 바칠 때마다 이 찬미가를 성모님과 함께 바칩니다.

  그런데 성모님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자신의 ‘비천함’과 연결짓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보잘것없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 이루실 위대한 일의 협조자로 간택되었다기에는 마리아 자신이 평범하다 못해 보잘 것 없는 시골 처녀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의 어느 마구간에서 태어나는 장면까지 연상하지 않더라도, 이미 하느님께서는 작고 비천한 자리를 찾아서 인류와의 만남을 이루시는 분임을 마리아는 이미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비천한 자리, 낮은 자리에 함께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낮아져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비천하다고 여기지 않는 이 앞에서는 자신을 비천하다고 말해도 그것이 부끄럽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크고 위대하신 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기에, 내가 보잘 것 없다 여기는 사람에게는 큰 위안과 용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그리고 굳이 보잘 것 없는, 비천한 곳을 찾아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강생(降生)은 이러한 마리아의 찬미와 고백을 통해 ‘사랑’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자신보다 작아진 하느님을 만나게 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보다 비천하고 보잘 것 없어짐을 마다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누군가 앞에서 작아지는 것이 두렵거나 억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사랑으로 받아들일 만 할때에는 기꺼이 그렇게 해 나갑니다.

  마리아의 노래를 우리의 기도로 삼으면서, 우리가 바치는 희생과 봉사와 나눔이 이러한 사랑의 표현이 되어야 함을 되새겨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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